신구범 전 지사 "제주4.3은 남로당 폭동"이라면서 토론회 갖자 제안

제주도내 보수단체에서 활동 중인 몇 명의 인사들이 제주4.3 사건을 '남로당의 폭동'이라고 주장하면서 또 다시 헐뜯기에 나섰다.

제주4.3 희생자 위령제가 진행되는 무렵에 매년 흠집내기에 나서고 있는 이들 세력은 올해도 변함없다. 특히 올해는 4.3 70주년 기념사업에 항거라도 하겠다는 듯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가 전면에 나섰다.

   
▲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는 제주4.3 사건이 '남로당의 폭동'이라고 규정하면서 4.3특별법 개정을 중단하고 4.3에 대한 성격을 규명짓기 위한 토론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스제주

신구범 전 지사를 비롯한 20명의 인사들은 17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4.3특별법 개정을 중단하고 제주4.3의 성격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한 토론회를 갖자고 제안했다.

신 전 지사는 "과거 도지사 시절에 제가 가장 먼저 4.3 합동위령제를 지냈던 사람"이라고 강조하면서 "진실 규명을 위해 단체를 조직하고 열심히 해 온 분들과 뜻을 같이 하고자 이 자리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이어 신 전 지사는 제주4.3의 성격을 두고 '남로당의 폭동'이라고 규정하면서 "현재 제주4.3 진상조사 정부보고서엔 4.3사건의 성격이나 역사적 평가가 보류된 상태여서 이를 먼저 규명하지 않고 4.3특별법을 개정하는 건 허상"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을 놓고 보면, 신 전 지사의 발언이 어디까지 진심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1994년 도지사 재임시절, 여러 개로 나뉘어 있던 4.3 사건에 대한 각종 제사를 하나로 모아 제를 지낼 수 있게 했다. 이 때부터 희생자에 대한 예우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러한 업적을 이뤘던, 제주도민의 민의를 대변했던 전직 도지사가 이제와서 왜 정반대의 입장에 섰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위기 때부터 보수 정권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시작하자,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선 "변했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평가가 출몰했다.

특히 그는 정치인들이 4.3특별법 개정안에서 제주4.3의 정의를 '경찰과 서북청년회의 탄압에 대한 제주도민의 저항'으로 미화하고 있다며 "제주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신 전 지사는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해 일으킨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는 진실을 묻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제주4.3진실규명을 위한 도민연대 준비위원 일동'. ⓒ뉴스제주

이를 두고 기자단 측에선 "기자회견문 자체가 왜곡된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일었다. 개정안 내용에선 신 전 지사가 언급한 문장도 있지만 무장대(남로당)에 대한 내용도 실려 있다. 신 전 지사가 한 쪽만 강조해서 작성한 기자회견문 자체가 '왜곡'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신 전 지사는 "350명의 무장대가 12곳의 경찰지서를 습격한 건 형법상 내란죄가 아닌가. 이걸 민중봉기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이래서 토론회가 필요한 것"이라고 오히려 맞받아쳤다.

토론회 얘기로 흘러가자, 다시 기자단 측에선 "토론회를 통해 원치 않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오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묻자 신 전 지사는 즉답을 피했다.

신 전 지사는 "그간 제주에선 토론회 다운 토론회가 없었다. 토론회는 어떤 결론을 내리는 곳이 아니다. 서로의 논점을 정의해서 결론으로 가는 과정"이라며 "4.3의 성격 규명을 위해 진행하는 토론회일 뿐"이라고 말을 돌렸다.

토론회를 통해 4.3의 성격을 규명하자고 해놓고선, 정작 (어떤 결론으로 이어지든)규명된 성격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질의엔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답변을 계속 피하는 발언으로 논쟁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자 "승복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무마했다.

그러면서 신 전 지사는 "일부에선 4.3에 다시 흠집내는 거라고 하는데 그런 건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흡집내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올해는 70주년의 해다. 현 제주도지사도 이를 만천하에 알리고 화합과 상생을 강조하고 있다. 기자회견문 상에선 "저희도 무고한 희생이 있었다는 점과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문제는 찬성한다"고 하면서도 매번 같은 문제로 발목잡기에 나서고 있는 점이 그렇다.

   
▲ 제주4.3평화공원 내 희생자 위패봉안소. ⓒ뉴스제주

게다가 이미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지난 2000년 1월에 제정된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4.3특별법)을 개정하는데 뜻을 모았다. 국회 법제실 등의 검토과정을 거쳐 지난해 12월 19일에 여·야 국회의원 60명의 서명을 받아 오영훈 국회의원의 대표발의로 개정안이 제출됐다.

신 전 지사가 속해있는 자유한국당 제주도당도 4.3특별법 개정만큼은 여당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신 전 지사가 당론을 반하는 기자회견에 나서자 자유한국당 제주도당은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심지어 '탈당'을 권유하겠다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신 전 지사는 "당이 제게 그런 요구를 할 권리가 없다"며 "당에서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데 어제 사임서를 제출하고 이 자리에 왔다. 당원으로서가 아니라 제주도민으로서 온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에서 공식 결론을 냈던 '4.3진상조사 보고서' 자체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냐는 물음에도 신 전 지사는 "보고서엔 4.3의 성격이 규명되지 않았다"며 같은 입장을 되풀이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이들은 자신들을 '제주4.3진실규명을 위한 도민연대 준비위원'이라고 명명했다.

신 전 지사를 포함해 박찬식 전 제주도행정부지사,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김순택 아르고스 총회장, 이동해 제주4.3정립유족회 회장, 홍석표 전 제주산업정보대학 교수, 김정문 공학박사, 문대탄 전 제주일보 상임논설위원, 강원현 (사)3.1정신보급운동연합 제주지역본부장, 장승홍 전 언론인, 이승학 전 중등교감, 양원갑 전 육군 준위, 김승필 전 주민자치위원장, 강성훈 전 육군 중령, 연극인 이광후, 김성석 4.3유족, 고영석 호우회원, 오을탁 자유논객연합 상임위원, 김동일 자유논객연합 회장 등이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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